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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IOSITY

영화, 드라마에서 쓰이는 "사극 말투" 유래가 무엇일까

 

 

 

Photo by Heather Lo on Unsplash

 

 

 

 

 

 

평소처럼 유튜브 알고리즘 파도를 타고 서핑하다가 흥미로운 영상을 시청하였다.

현대국어, 근대국어, 후기중세국어, 전기중세국어, 고대국어(신라어)가 담긴 영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준다.

 

www.youtube.com/watch?v=uGDDyMWHJtg

 

 

이 영상을 보고 나니 문득 우리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의 사극 장르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사극에서는 어느 시대나 '하옵니다'와 같은 비슷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 시대적 배경을 고증한 한국어는 아닐테다.

그렇다면 대체 이 "사극 말투"는 어디서 부터 유래된 것일까.

 

 

여담이지만 중세, 근대 국어에 대한 자료도 많고 사극에 대한 미디어 자료도 많았지만 사극에서 쓰이는 한국어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조금 어려웠다.

이는 내가 당시 잠들기 전 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다가 돌연 검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논문과 같은 높은 수준의 자료 쪽은 찾아보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하나는 있을 것 같다. 논문이란... 그렇다.

어차피 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X) 검색(O)했다.

 

 

검색을 하던 중 드라마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를 집필한 박상연 작가의 GQ 잡지 인터뷰를 발견하였다.

인터뷰 주제가 마침 사극과 한국어였기 때문에 내가 궁금하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글의 분량이 길지 않은데 질문과 답변이 알차서 재미있게 읽었다.

 

www.gqkorea.co.kr/2014/10/02/%ED%95%9C%EA%B5%AD%EC%96%B4%EC%99%80-%EB%93%9C%EB%9D%BC%EB%A7%88-%EC%82%AC%EA%B7%B9%EC%9D%84-%EC%A4%91%EC%8B%AC%EC%9C%BC%EB%A1%9C/

한국어와 드라마, 사극을 중심으로 | 지큐 코리아 (GQ Korea)

박상연은 조선시대 한글 창제를 다룬 와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을 집필했다. 그에게 사극 속 한국어 대사와 한글에 대해 물었다. 는 한글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대본을 쓰면서 한글과 한국어

www.gqkorea.co.kr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사극 말투는 시청자들에게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용 중 '판타지' 언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어떠한 규범이 존재할 거라 예상한 것과 다르게 사극 말투란 약 40년 동안 축적된 사극 데이터에 의한 작품과 시청자 간의 공감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를 인식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선 안에서 작가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극 장르의 비교적 새로운 유형인 퓨전사극의 경우 틀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것이 느껴진다.

 

<선덕여왕>에서 화랑들이 공주를 만나면 “비천지도의 화랑 알천, 화랑의 주인 공주님을 뵈옵니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유럽 중세 의 기사도 기록을 참고해 문어체로 바꿔 적용했다. 이전 어떤 사극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사극의 말투가 대부분 조선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신라만큼은 우리 만의 상상력으로 신라만의 분위기를 새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ㅡ GQ 인터뷰 중 

 

실제로 《선덕여왕》 시청 당시 공주에게 올리는 인사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신라만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다니 나로 인해 그 효과가 증명되었다.  

 

박상연 작가는 현재 사극의 말투가 신봉승 선생의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는 1983년 부터 시작하여 8년간 방영된 MBC의 사극이다.

아래는 시리즈 중 3부 《설중매》의 8화이다.

 

초창기 사극이라 하여 아무래도 약 40년 동안 데이터가 쌓인 현대에 제작된 사극의 말투와 조금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큰 차이 없이 유사하다.

오히려 어린 나이로 등장하는 단종이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는 모습에서 이 드라마가 제작된 시대적 배경이 느껴졌다.

 

www.youtube.com/watch?v=ZR88If76E0Y

 

 

추가적으로 알아보니 국내TV 최초의 사극은 1962년 방송된 김재형 PD의 《국토만리》라고 한다.

이 드라마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더불어 인터뷰 안에서 최근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의 현 모습과

한국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 사극을 집필하는 작가로서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 정말 흥미로웠다. 

 

영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건 문제다. 하지만 ‘저 사람 정말 쿨하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저 사람 정말 멋져’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캐릭터다. 드라마에서 어떤 단어를 쓸 때 중요한 건 한국어인지 아닌지 보다 그 단어가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ㅡ GQ 인터뷰 중

 

 

드라마 외에 소설 쪽으로 장르를 틀어보면 더 방대한 자료와 오래된 역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실제로 입으로 발화되는 사극 말투에 대해 흥미가 있었으므로 더 이상 찾아보지 않을 생각이다.

검색을 시작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주로 신하 역을 맡은 배우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낮고 거친 톤이나 억양의 시초였는데 

최초의 사극 드라마인 《국토만리》 영상을 볼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답을 찾는 건 어려워 보인다.

 

어찌되었든 언어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가장 명확하게 세상을 보여준다. 

극 중 인물에게 어떤 언어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인물은 시청자에게 설명된다.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을 정의하듯이 말이다.

 

앞으로도 차조심 불조심 입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