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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19 이대로 속아버린대도 괜찮다 종종 새벽이면 받게 되는 동그란 메시지. 닳고 닳은 언어로 밖에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저 먼 별에서부터 숨차게 달려온다. 쏟아져 내리는 사랑의 얼굴들이 품에 안겨들지만 원체 팔을 들어 마주 안을 수가 없다. 머리 구석구석에서 버섯처럼 자라나는 의심들. 더 이상 속고 싶지 않은 마음은 냉소적인 표정이 되어 얼굴 위로 떠오른다. 한 꺼풀 너머의 존재를 궁금해하지 말자 다짐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고 한다. 너와 내가 마주할 때 우리가 서로의 맨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고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나를 보고 있는 그건 너의 몇 번째 얼굴일까. 그럼에도 비는 내린다. 엉성하게 쌓아 올린 지붕 위로 가랑비가 내린다. 하루, 이틀, 1년을 꼬박 내리고 나면 가랑비에도 온 마을은 물에 잠..
#18 지지 않기 위해 경기에서 도망쳤다 ※ 이 블로그의 모든 글이 그렇듯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슬램덩크라는 대인기 작품이 소재이다 보니 굳이 짚고 넘어갑니다. 요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영화로 인해 만화 슬램덩크의 인기가 상당하다. 나는 슬램덩크 세대도 아니고 만화책을 좋아하지도 않아 슬램덩크라고 하면 강백호라는 인물이 농구하는 만화라는 것만 알고 있다. 쓰고 보니 만화책도 안 읽고 그 시절 세대도 아닌 내가 슬램덩크의 주인공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슬램덩크 인기를 반증하는 셈이네. 그랬던 내가 최근 친구의 추천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영화를 보았고 슬램덩크라는 만화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좋았고 슬램덩크의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과유불급을 직접 보여주는 여운 있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을 보는 ..
#17 신년계획 2021년이 딱 2주 남았다. 올해는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 많았다. 감정의 폭풍이 속을 죄다 뒤집어놓고 가버린 해였다. 내가 스스로 발을 떼지 않으면 새로울 것 없는 생활 속에서 감정 하나로 다이나믹하게도 살았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깎아먹기도 하고 구름 위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지금은 있다. 문득 내년에 하고 싶은 일들이 한두 개씩 떠올라서 글을 쓴다. 1. 책 내기 내가 쫌쫌따리로 써둔 글들을 모아서 소장용 종이책을 뽑아 볼 생각이다. 몇 년째 편집을 하다말다 하다말다 하는 중이라 그새 글들이 늙어가서 계속 첨삭하게 된다. 이러다 글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엔 무조건 뽑아보자. 객관적으로 훌륭하다 싶은 글들은 아..
#16 사랑이 참 쉬워져 다른 생각 지워져 심장 소리는 커져 사랑이 참 쉬워져 그래서 빠지고 빠져 점점 너에게 최근 트와이스의 알콜 프리(Alcohol-Free)라는 곡을 즐겨 들었다. 재생 후 5초만 지나도 나의 몸은 이미 한여름 태양볕 그늘 아래 누워 시원한 바람에 머리칼을 맡기고 있다. 누가 들어도 '이 곡은 필시 여름에 들으시오.'라고 비트 사이사이에 새겨져 있는 셈인데도 불구하고 이제 그늘 밖에서도 시원한 바람 아니 차가운 바람을 맞는 계절에 뒤늦게 푹 빠져 들었다. 이 곡은 이제 막 사랑에 빠져 두둥실 들뜬 기분을 알딸딸하게 술에 취한 기분에 빗대어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 곡의 가사를 압축하고 압축해서 딱 한 구절만 남겨보라고 한다면 나는 '사랑이 참 쉬워져'라는 가사를 남겨두고 싶다. 나는 이 ..
#15 늘 위로를 찾았던 자리에서 나는 버려졌다 세상은 무엇도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목 끝까지 차오른 버거운 인생에 익사하지 않도록 겨우 발버둥 치는 날들이 연속되고 있다. 나의 인생은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가득 들어차 나의 숨구멍을 막았다. 넘쳐흐르기 일보직전 찰랑이는 표면과 같은 마음에 오늘 음표 하나가 마지막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나는 추락하고 추락하고 추락하고 추락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바닥을 치며 추락해본 기억이 없었다. 바닥은 얼룩지고 귀에는 여전히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시간은 규칙적으로 흐르는데 나는 박자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인 건 늘 같은데도 이 작은 벽이 마지노선이 되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무거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악보 위에 열심..
#14 깍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의 말이라면 그것이 옳든 부당하든 의심하지 않았다.선생님은 늘 옳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12년 동안 어떤 선생님을 만나던지 모든 선생님들께는 배우고 존경할 점이 있었다고 생각했다.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셨고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멋있는 분이셨고 수험생 시절 담임 선생님은 똑똑한 분으로 나도 나중에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하게 한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전혀 존경할만하지 않으며 부당한 대우를 하셨던 분들이 많다.11살 반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부부 생활을 물어본 선생님반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며 압도적인 투표수를 받은 여학생 대신 후보에 있던 남학생을 반장으로 임명한 선생님자신이 애인과 다투었다며 기분이 좋지 않다고 종례를 두 시간 넘게 끝내주지 ..
#13 터널 올 한해를 돌아보면 지난 1년은 검은 터널 속을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것과 같았다. 정체 모르는 커다란 괴물이 내 등 뒤 딱 한뼘되는 거리에서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뒤는 커녕 내 옆을 쳐다볼 새 없이 앞이라고 어림 잡히는 방향으로 달려야만 했다. 가장 최초의 원인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이것이었다. 나는 못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현명한 질문하는 법을 몰랐고 그를 통해 배우는 법을 몰랐다. 어느 무리에 있건 늘 중간 이상을 해내왔다. 남들에게 부탁하거나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스스로 발품 팔아가며 남의 시간을 빼앗아 그 사람의 역량을 얻어내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운 좋게도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함에도 나는 어려웠다. 아마 이 좋은 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
#12 인간유지비 TV를 포함한 많은 어른은 어린 나에게 내가 어른이 될 때쯤엔 다들 100살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백세시대'라는 말은 이미 의미가 가슴에 와닿지 않을 만큼 닳아버렸다. 고작 10년을 살았던 나에게 100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고 실감 나지 않았다. 그저 무엇이든 많으면 좋은 거니까, 세배하고 나면 늘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을 하도록 교육받았으니까 좋은 건가 보다 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100살까지 살게 된다면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많은 나이지만 100년은 허투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차츰 깨달아 가고 있는 나이다. 6개월간 치과에 다녔었다. 매번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주로 토요일 오전에 치과를 갔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억울해지는 것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