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질문이 하나 들어왔다.
"당신은 명왕성이 행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행성을 발견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건 분명 소름 돋을 만큼 좋은 일일 것이다.
"아뇨."
나는 대답했다.
"명왕성은 행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ㅡ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는가, 마이크 브라운
인간 역사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해왔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천문학자라는 직업은 가장 오래된 직업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천문학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우주만큼이나 일반인들에게 신비로움이 가득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지구과학을 사랑하는 학생이었던 나는 지구과학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슴 한편에 항상 지구과학에 대한 애정을 품고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지나치기 힘들었다.
명왕성이 어쩌다 태양계 행성 계급에서 강등당하게 되었는지 매스컴에는 나오지 않는 당사자가 풀어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졌다.
태양계 행성을 '수금지화목토천해' 라고 끝냈을 때 어딘가 찝찝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명왕성이 퇴출된 소식을 기사로 접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 책은 단 몇 줄의 기사가 나오기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새로운 행성을 찾고자 했던 천문학자가 어쩌다 도리어 '명왕성 킬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천문학자가 직접 쓴 연구 이야기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굉장히 재미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한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찾는데에서 시작하여 명왕성이 퇴출되는 날까지 진행되는데 그 안에 천문학자의 일과, 별을 관찰하기 위해 천체망원경을 예약하는 방법, 천문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지는 별 관측법, 올바르게 우주를 설명하기 위한 천문학자의 역할 등 실제 천문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천문학자는 사실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시간 보다 컴퓨터 앞에서 코딩을 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밖에 마이크 브라운 박사의 개인사, 행성을 둘러싼 갈등 등 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설명만 들으면 별일 없을 것 같지만 아주 많은 풍파와 갈등과 시련과 반전이 있어 흥미진진하고 끝을 향해 갈수록 다음 장을 넘길 수밖에 없는 전개에 각 장면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날 밤, 시곗바늘이 자정을 딱 넘기는 순간, 나는 결국 내기에 지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태양계의 끝을 보는 대신, 나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ㅡ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는가, 마이크 브라운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이크 브라운 박사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할 때마다 행성에 이름을 붙여주는 부분들이었다.
이름을 직접 짓는다는 건 그 행성을 가장 먼저 발견한 천문학자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일종의 프라이드 같은 것이라고 한다.
마이크 브라운 박사는 행성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매번 심혈을 기울이는데 발음하기에 괜찮으면서도 그 행성만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찾기 위해 여러 신화를 찾아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책에서 마이크 브라운 박사가 마지막으로 행성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스포가 되지 않게 이야기 하려다보니 설명이 조금 이상한데.. 읽어보면 이해할 것이다.
(이미 과거에 벌어진 일이라 스포라고 하기도 이상하지만.)
또한 "행성" 을 둘러싼 국제천문연맹의 결의가 진행되고 마이크 브라운 박사가 밖에서 기자들에게 결의안을 설명해주며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장면도 포인트이다.
현장에서 결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처럼 흥분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1930년 명왕성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그것을 부를 만한 다른 좋은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명왕성이 해왕성 너머 궤도를 돌고 있는 수천 개의 천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투표는 1930년에 있었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실수를 다시 바로잡는 투표가 되어야 합니다.
아홉 개의 행성에서 여덟 개의 행성으로 바뀌는 것이 과학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ㅡ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는가, 마이크 브라운
그토록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길 바랐던 마이크 브라운이 자신의 오랜 염원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천문학자로서의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별명은 '명왕성 킬러' 로 남게 되었지만 그는 천문학이 대중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아닌 올바른 길을 걷도록 만든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천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관심이 갈 책이지만 동시에 천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을 책이라고 자신한다.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무겁지 않고 재미있고 쉽게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명왕성은 행성 지위가 박탈된다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손에 땀을 쥐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증명한다.
그래서 천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모두 추천한다!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이라 추천하기에도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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