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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11 떠나보내는 해

Photo by  Thư Anh  on  Unsplash

 

 

 

오늘이 딱 크리스마스로부터 한달하고 하루가 부족한 날이다. 

벌써 연말이라는 소리다. 날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블로그에 다시 접속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포스팅한 글의 날짜를 보았더니 두달하고 며칠 더 되었더라.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았다. 체감은 서너달이었는데... 내가 많이 정신없이 바빴나보다.

 

어제 그리고 오늘, 복잡한 감정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어디라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어디에도 할 수 없는 생각들이 심장을 눌러왔다.

그리고 그 끝에 이 블로그가 기억이 났다. 그동안 잘도 잊고 살았네.

 

메모, 노트 정도로 이름을 붙인 이 게시판에 가장 글을 많이 쓸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별다른 정보성이 없고 아무렇게나 지껄일 수 있어서 쉽게 글을 쓰게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무거운 마음을 여기에 조금 털어놓으려고 한다.

 

올해는 다양한 도전과 많은 시작들이 있었다. 많은 걸 얻었다. 

그리고 많이 떠나보내는 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떠나간 한 사람에 대해 조금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내가 사랑하던 A.

숨 쉴 틈 없이 바쁜 사이,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몇 마디의 문장으로 추억과 함께 내 곁을 떠나갔다.

처음엔 믿겨지지 않았고, 충격적이었고, 상처받았고, 마침내 허무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무뎌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끝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많이 좋아했다. 그는 언제나 나의 자랑이었으며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의 자유로움을 존경했고 그의 노력과 열정을 사랑했다.

 

늘 그답게 살아가길 원했다.

그런데 그에게 나는 그의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을까?

 

이것이 드라마라면 너무 뻔한 복선으로 비웃음을 살 정도로

나는 오래전부터 크게 위태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잔인했고 결과는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그가 떠난 이후로 연락을 해볼까 몇 번 고민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대화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몇 마디의 대화따위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로부터 한달 뒤였나... 한 번 꿈을 꿨었다.

그와 내가 화해하고 다시 웃으면서 서로를 마주 보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들었던 감정은 무슨 감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정의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일도 평생 처음이었기 때문이겠지.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날 이후로 그와 내가 평생 서로가 없던 것처럼 지낸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너한테는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존재였는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냥 몇 마디 말로 정리되는 추억들인지.

 

아니, 물어보기 싫다.

다 맞는 말일까봐 물어보기 무섭다.

 

아마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 생각난다.

사실, 아직도 그는 나의 즐겨찾기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지독한 건망증으로 자주보던 사람도 몇 주 보지 않으면 이름을 잊어버리는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만한 존재였다. 그는 나에게.

 

그와 나는 바로 옆에 붙어있던 가까운 사이였던 만큼

둘 관계가 끊어져버리니 더 이상 우리 사이에 연관되는 줄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우리 둘은 우리 둘 뿐이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행복"의 장애물을 제거한 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란다.

네가 나와 저울질한 그를 평생 좋은 사람이라 착각하며 평생 행복하게 살아라.

절대 후회하지 말아라.

그리고 너를 다 잃지 말아라. 제발.

 

 

사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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